〈코다〉(CODA, 2021)는 '청각장애 부모 밑에서 자란 청인 자녀'라는 설정만으로도 큰 울림을 주는 영화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휩쓸며 그 감동과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CODA란 Child of Deaf Adults의 약자로, 영화는 이 의미를 문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확장시킨다.
주인공 루비는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생계를 돕는 동시에 가수라는 자신의 꿈을 좇는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가족이라는 집단 사이에서의 긴장, 소통의 본질, 그리고 타인과 '다르게 존재하는 법'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겹겹이 쌓인다.
〈코다〉는 단지 장애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다름' 속에서의 연결과 성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성장 서사다. 이 글은 〈코다〉를 서사와 캐릭터 해석, 철학적 상징과 윤리적 갈등, 영화사적 의미와 표현 방식으로 나누어 조망하고자 한다.
1. 듣는 자의 책임과 말하지 못하는 사랑: 성장과 거리두기의 드라마
루비는 어부로 일하는 청각장애 가족과 함께 살며, 통역자이자 생계의 중추로 기능한다. 가족은 그녀 없이는 사회와 단절되어 있으며, 그녀는 가족 없이는 꿈을 펼치기 어렵다. 이 상호의존의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울타리로 작용한다.
이 갈등은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과 연결된다. 루비는 '자기 정체성 vs 역할 혼란'의 경계에서 흔들린다. 그녀의 꿈은 음악이라는, 가족과는 공유할 수 없는 감각의 세계에 있다. 이때 영화는 사춘기 자녀의 '심리적 거리두기'와 '개별화'라는 전통적인 성장의 통과의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특히 음악 오디션에서 루비가 손짓과 노래를 병행하는 장면은 자기 정체성과 가족 정체성을 모두 수용하는 융합의 순간으로, 성장 서사의 정점을 이룬다.
2. 언어 이전의 감각: 소통, 윤리, 그리고 사랑의 다른 형태
〈코다〉는 소리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세계에 '소리 없음'을 침투시킨다. 하지만 청각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감각적 세계를 형성하는 방법이다. 루비의 가족은 말 대신 몸짓과 눈빛, 리듬과 촉각으로 소통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자크 데리다의 '로고스 중심주의' 비판과 맞닿는다. 말(음성)만이 참된 소통이라는 믿음을 깨고, 비언어적 감각의 진실성과 깊이를 드러낸다.
또한 루비가 가족을 떠날 수 있는가의 윤리적 질문은, 단순한 이기심과 책임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이마누엘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에 따르면, 타자(가족)의 고통에 응답하는 주체는 무조건적인 책임을 지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고유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루비는 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이란 무엇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3. 리얼리즘과 음악, 그리고 장애 재현의 진정성
〈코다〉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에서도 특별하다. 왜냐하면 청각장애 배우들이 실제로 캐스팅되었고, 대사보다 수어(수화)의 흐름과 타이밍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의 '재현'을 넘어 '존재'를 드러내는 영화사적 전환점이다.
미장센 역시 과장 없이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에 가깝고, 음악은 감정 과잉 없이 절제되며 흐른다. 오히려 '소리 없는 장면'이 주는 침묵의 힘은 음악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들을 수 없는 음악'이라는 역설을 통해 관객에게 공감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시청각적 실험이기도 하다.
〈코다〉는 단지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류 영화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을 윤리적으로 전복한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향한 헐리우드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론
〈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오히려 이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관계가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보여준다.
루비는 가족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이에서의 존재'를 선택한다. 이 선택은 많은 이들이 겪는 정체성의 충돌, 돌봄의 윤리, 그리고 자유에 대한 질문에 진지하게 응답한다.
〈코다〉는 감동을 넘어, 관계의 윤리학과 언어의 철학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시대의 작은 걸작이다.
그리고 오늘, 누군가와의 단절을 느끼고 있다면,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또 소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