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제목만큼이나 파격적인 구성으로 2022년 아카데미를 휩쓴 작품이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일상에 치인 중년 여성 에블린은, 어느 날 다중 우주(multiverse)를 넘나드는 존재로 각성한다. 이 설정은 단순히 SF적 장치가 아닌,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정체성 혼란, 관계 회복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Daniels)는 장르의 경계를 유쾌하게 무너뜨리며 코미디, 액션, 드라마, 판타지를 한데 엮는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와 여성 주체의 성장, 세대 간 갈등의 해소라는 매우 현실적이고 감정적인 주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글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서사 구조, 철학적 해석, 영화사적 맥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며, 왜 이 영화가 21세기 가장 독창적인 걸작으로 꼽히는지를 분석한다.
1. 현실과 혼돈을 넘나드는 '엄마' 서사: 다중우주의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 에블린은 단순한 가정주부가 아니다. 그녀는 세탁소 운영, 국세청 감사, 남편과의 관계, 딸과의 갈등 등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지금 여기'의 인간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중우주를 넘나들며 수천 개의 다른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 '멀티버스 서사'는 단순한 SF 설정이 아니라 '삶의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지금의 나를 수용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셉 캠벨의 영웅 여정 구조에서 보자면, 에블린은 '영웅의 부름'을 거부하다 결국 세상의 균열을 봉합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여정은 가족 서사, 특히 딸 조이(잡투파키)와의 관계로 수렴된다. 수많은 우주 속 딸을 만나고, 이해하고, 끝내 손을 내미는 과정은 '부정의 세계에서 긍정의 세계로' 넘어가는 전통적인 드라마 구조를 따른다.
2. 니힐리즘과 해탈 사이: 존재의 무의미와 사랑의 윤리학
에블린이 마주하는 딸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경험한' 잡투파키(조이) 다. 그녀는 모든 의미가 붕괴된 세계에서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세계'를 구축한다. 이는 니체의 허무주의, 부조리 철학의 대표자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연상케 한다. 조이는 의미 없는 우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모든 걸 끝내고 싶어 하지만, 에블린은 반대로 '무의미 속에서도 사랑과 연대는 가능하다'는 태도로 맞선다. 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부조리한 세계에서도 윤리적 힘으로 기능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베이글'이라는 상징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공허함이자 해탈의 이미지로 읽힌다. 불교의 공(空) 사상과도 연결되는 이 상징은 서양의 무신론적 허무주의와 동양적 깨달음 사이의 다리를 놓는다.
3. 장르 해체와 영화사적 실험: '모든 것의 콜라주'라는 혁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영화다. 액션 장면은 홍콩 무협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유머와 코믹 요소로 탈장르적 전환을 꾀한다. 편집은 폭발적이고, 미장센은 수시로 스타일을 바꾸며 관객의 인식 틀을 흔든다. 특히 핫도그 손, 바위 세계, 애니메이션 장면 등은 실험영화적 감각을 대중적으로 소화한 예로 평가된다. 이 영화는 미셸 여우라는 아시아계 여성 배우를 중심에 세움으로써 할리우드의 다양성과 대표성 문제에도 결정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동시에 인디 영화로 시작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수상한 이력은, 21세기 이후 영화 산업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상징한다. 영화는 더 이상 대형 스튜디오의 전유물이 아닌, 실험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창작이 주류를 이끄는 시대임을 보여준다.
결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끝내 관객의 마음에 남는 것은 단 하나의 메시지다. "지금 여기, 나와 너의 삶이야말로 진짜 의미가 있다"는 것. 잡투파키의 허무 속에서 에블린이 내미는 사랑의 손길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혼란과 피로 속에서도 끝내 사람을 붙드는 이유가 된다. 이 영화는 철학적 성찰과 시청각 실험을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존재의 파편화, 가족 안의 단절,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을 이야기한다.
당신에게 지금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 질문을 던지며, 혼돈의 세계에서 작은 사랑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구원적인지를 다시 일깨워준다.